“뇌의 정보를 컴퓨터처럼 읽고 쓰는 게 가능해진다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주입할 수도 있을 겁니다. A의 기억을 가진 B는 A라고 봐야 할까요, B라고 봐야 할까요?”
김소윤 의료법윤리학연구원 부원장(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장, 교수)이 28일 대구 동구 한국뇌연구원에서 열린 ‘2017 신경윤리 워크샵: 신경과학의 윤리적 도전’에서 던진 질문이다. 청중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날 워크샵에는 뇌과학자와 법학자, 신경과 전문의, 공학자, 윤리학자 등 2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했다.
‘신경윤리(neuroethics)’란 뇌과학(신경과학)과 관련된 과학기술 연구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함의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김경진 한국뇌연구원장(DGIST 뇌·인지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은 “인간 뇌 지도(커넥톰) 구축 등 최근 세계적으로 신경과학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와 관련해 고민해야 할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신경윤리도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인-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생각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는 모습. - UPMC 제공
● 인간 뇌-컴퓨터 연결… 정체성·책임소재 등 혼란
최근 신경과학계와 정보통신기술(ICT)계의 최대 화두는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 받는 ‘브레인-컴퓨터 인터페이스(BCI)’다. 지난 3월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창업자 엘런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뇌에 전극을 이식해 정보를 꺼내고, 컴퓨터에 업로드했다가 언제든 자유롭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뇌의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해독해 의도와 감각, 동작 등의 정보를 읽어내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물건을 집어 들거나 뇌에서 읽은 신호를 운동신경 자극으로 변환해 마비된 팔을 움직이는 일 등이 실험실 단계에서 이뤄졌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반대로 로봇의 손가락을 터치했을 때, 사람이 마치 자신의 손가락인 것처럼 몇 번째 손가락에서 터치감이 느껴졌는지 보지 않고도 알아 맞혔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이 BCI 연구를 하고 있다.
신경윤리학자들은 이처럼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쌓여가는 질문들에 사회가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특정 뇌 부위를 자극해 파킨슨병,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치료하는 연구에 쓰이는 ‘심(深)두뇌자극(DBS)’ 기술도 마찬가지다. ‘만약 미래에 슬픈 감정을 억누르거나 나쁜 기억을 지우고 대신 행복한 감정을 느끼도록 자극할 수 있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세상이 인간이 원하는 밝은 미래일까?’ 같은 의문이 생긴다.
김성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뇌를 제어하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인공지능(AI)화 되고, AI는 인간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령 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의 AI와 연결된 사람이 어떤 문제나 사고를 일으켰다고 가정했을 때, 그 책임을 AI, 시스템 개발자, 칩을 심은 신경전문의 중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8일 대구 동구 한국뇌연구원에서 열린 ‘2017 신경윤리 워크샵: 신경과학의 윤리적 도전’에서 이인영 신경윤리연구회장(홍익대 법대 교수)이 주제 발표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 사생활침해 등 악용·안전사고 우려… 제도·기술·국제공조로 대비해야
김성필 교수는 “현재까지는 BCI 기술이 신체마비 환자의 일상생활 자립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충분히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뇌에서 읽어낸 정보가 저장된 컴퓨터가 해킹당한다면 심각한 사생활 침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시스템을 제어할 수도 있게 된다면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로봇처럼 조종하는 일이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 또는 시스템 결함으로 사고가 나거나 사람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경윤리가 단순히 개인 양심의 영역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성필 교수는 “환자의 치료나 재활 외의 목적으로도 BCI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개발자들도 개발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기술적으로 악용 가능성을 차단할지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윤 교수는 “과학 연구는 호기심에 기반해 발전하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특히 어떤 연구가 이뤄지기 전에 윤리적으로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 평가하는 ‘사전 심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의 전 과정에서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 평가를 하는 제도를 ‘엘시(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s·ELSI)’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줄기세포, 인간유전체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엘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신경과학과 관련된 윤리적 고민을 활발하게 공론화 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명윤리법도 허용된 사항 이외의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금할지 명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윤 교수는 “국제적 공조 없이 국내에서만 막게 되면 해외로 연구자들이 빠져나가거나 윤리를 무시한 채 서로 경쟁적으로 연구에만 몰두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제도적인 노력과 기술적인 장치, 국제적인 공조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