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그리고 관련 과학·의료 기술

뇌과학 - 인공지능과 우리(7) 기계화 된 마음 '물질작용' (출처: 다음 카페, 솔롱고)

neoelf 2020. 2. 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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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작용을 근대 기계처럼 단순하고 결정론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물질이라는 말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뇌 속 물질들의 작용은 기계라기보다는 생태계처럼 복잡 미묘하다.

마음은 “물질의 작용일 뿐”인 게 아니라 “물질씩이나” 되었기에

‘뇌’라는 조건이 갖추어지자 마음이 생겨났던(emergence) 것이다.

이 정도면, 마음이 물질임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사랑은 화학 작용일 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묻고 싶다.

아니 그럼 화학 작용이 아닌 게 뭔데?


모든 뇌 활동은 물질의 작용 덕분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화학작용’일 뿐’이라는 말은 냉소적으로 들린다.

사랑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반면, 물질의 작용은 단순하고 하등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 뿐만이 아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비롯한 뇌영상(neuroimaging) 기술의 발달로 정신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의 뇌

활동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마음이 물질의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뇌 속 물질들은 어떻게 작용할까?

뇌 속 물질들이 어떻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기에, 마음이 물질의 작용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걸까?

뭔가가 물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동작할 것 같은가?


뇌영상 연구들은 특정 뇌 영역을 색깔로 표시한 그림과 함께(예: 아래 그림), 지나치게 간략하게 소개되곤

한다.[1]

다른 영역들과의 상호작용이나 실험의 세부 사항을 생략한 채 이런 그림이 소개되면, 비전공자들은 ‘표시된

영역이 소개된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가봐’ 라고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마음을 기능별로 구획할 수 있으며, 구획된 기능들을 뇌 속의 여러 영역에

할당(mapping)할 수 있으리라는 환원적인 추론에 이른다.[2]


‘도파민은 행복 호르몬’이라거나 ‘편도체는 감정의 중추’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된 표현 또한 환원적인

경향을 부추긴다.

이런 표현들은 행복과 감정이 개별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기능이며, 이 기능들은 도파민과 편도체라는

특정한 물질, 또는 부위에 할당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래서야 도파민과 편도체가 행복 또는 감정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의 부품이나 컴퓨터의 변수처럼

보인다.


이런 인식을 조금만 더 확장하면, 도파민이나 편도체같은 부품들로 구성된 뇌는 기계이고, 자의식이나 불안

같은 마음의 작용은 환상일 뿐이므로, 관련된 부위를 수선하는 약이나 장비로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설계된 대로 동작하는 기계는 오묘하고도 변화무쌍한 마음을 구현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뇌 속 물질들은 정말로 기계처럼 작동할까?

뇌 속 물질의 작용은 근대 기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고, 우연적이며, 끊임없이 변한다.

Blobology(블라볼로지; blob[색깔로 표시된 부분]의 학문)라는 조롱을 받던 fMRI 연구도 뇌와 신경망에

대한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는 뇌 활동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3]

도파민의 작용을 통해, 기계와는 다른, 뇌 속 물질들의 작용을 살펴보자.


신경조절물질 도파민은

 

도파민은 신경조절물질(neuromodulator)이다.

신경조절물질은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과 다르다.

글루타메이트(glutamate)나 가바(GABA)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 후 신경세포를 직접 흥분시키거나 억제

하며 시냅스 전 신경세포의 정보를 전달한다.


반면에,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아세틸콜린 같은 신경조절물질들은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을 조율

한다. 그럼으로써 신경망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신경망이 몸 안팎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신경조절물질들의 분비가 외부 상황이나 내적 상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전달물질은 뇌 전역의 다양한 신경세포들에서 생성되며, 시냅스를 통해 시냅스 후 신경세포로 분비된다

(위 그림 A).

반면, 몸 안팎의 상황에 맞춰 뇌의 전반적인 활동 패턴을 조율하는 신경조절물질은 뇌의 국소 영역에서만

생성되어 여러 영역으로 널리 전파된다.

도파민의 경우, 중뇌의 복측피개(VTA)와 흑질 치밀대(SNc)에서 생산되어(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줄무늬체(striatum), 전두엽, 해마, 편도체 등으로 분비된다.

중뇌의 조그만 영역에서 생성된 도파민이 어떻게 전두엽처럼 멀리 있는 뇌 영역까지 전해지는 걸까?

세포체가 복측 피개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는 전두엽까지 이르는 긴 축삭돌기(axon) 를 뻗는다.

도파민은 이 축삭돌기의 말단과 중간중간의 불룩한 부분에서 분비된다.(위 그림 B, 축삭돌기를 저렇게 멀리

보냈는데 도파민이 축삭돌기 말단에서만 분비된다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나!)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를 통해 한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것과 달리(위 그림 A), 신경조절

물질은 이렇게 축삭돌기 중간 중간에서 방사되므로(위 그림 B) 방사되는 곳 인근에 있는 여러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조절할 수 있다.


00brainlove4.jpg


민이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세포막에 있는 도파민 수용체 덕분이다.

도파민 수용체는 세포 밖의 도파민과 결합하여, 세포 안쪽 물질들의 활동 방식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도파민 수용체는 모두 5가지가 있는데 크게

흥분성인 D1형, 그리고

억제성인 D2 형으로 나뉜다.[5][6]


하나의 뇌 영역에는 보통 D1형과 D2형 수용체들이 섞여있는데 D1 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한 신경망에서는

강한 입력을 받는 소수의 신경 세포들만이 크게 활성화되고 학습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아래 그림 A).

반면에, D2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한 신경망에서는 약한 활성을 보이는 다수의 신경세포들이 신경망에

존재하게 된다(아래 그림 B).


00brainlove54.jpg



이처럼 도파민은 날씨나 계절처럼 신경망의 전반적인 활동 양식을 조절한다.[7]

같은 가을이라도 지역에 따라 풍광이 다르듯이, 도파민의 효과도 뇌 영역에 따라 다르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대표적인 영역인 줄무늬체와 전두엽을 비교하며 도파민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자.



전두엽의 도파민

 


전두엽에서 D2형 수용체는 대체로 도파민 농도가 높아야 활성화하고, D1형 수용체는 도파민 농도가 낮을

때에도 활성화한다고 한다.[5]

또 도파민은 강한 자극이나 스트레스, 보상처럼 생존에 중요한 자극을 접했을 때 분비된다.[9]

이제 전두엽 중에서도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 관련된 영역인 배외측 전전두피질 (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을 생각해보자.[8]


상처럼 생존에 중요한 자극을 접할 때면, 배외측 전전두피질의 도파민 농도가 높아져 D2형 수용체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이 중요한 자극들이 작업 기억에 유입되기 쉬운, 산만한 상태가 될 것이다(아래 그림).[5]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도파민이 확산하고 분해되며 도파민 농도가 낮아지면 D1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해질

것이다.

그러면 얼마 전에 작업 기억에 유입된 중요한 자극 몇가지를 집중적으로 학습하기 유리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정말이지 절묘한 시스템이 아닌가! 




그런데 배외측 전전두피질의 도파민 분비가 유난히 많거나, 배외측 전전두피질에서 도파민을 분해하는 효소의

작용이 특별히 약하거나, D2형 수용체의 밀도가 높은 것과 같은 이유로, D2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한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작업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엔 유리하지만 산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전두엽의 D2형 수용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정신분열증(주의력 장애는 정신분열증의 주된 증상 중 하나)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향정신성 약물은 D2형 수용체의 작용에 영향을 끼친다.[10][11][12]



줄무늬체의 도파민

 


도파민의 농도가 변하는 속도는 뇌 부위에 따라 다르다(아래 그림).

전두엽에서는 도파민 농도가 느리게 올라간 뒤 수 분~수십 분 동안 높은 상태로 지속되지만, 줄무늬체(striatum)에서는 도파민 농도가 수십~수백 밀리초 단위로 빠르게 오르고 내린다.[5][13]

줄무늬체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는 장소들의 밀도와 분비된 도파민을 분해하는 효소의 밀도가 높아, 도파민

농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빠르게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무늬체의 도파민은 특정한 타이밍에 특정한 행동을 촉발하거나, 억제하고, 학습시키기에 적합하다. 

줄무늬체의 도파민이 충동과 동기 부여, 행동의 선택과 학습에 관련된 이유다.[14]


00brainlove7.jpg


두엽과 달리 줄무늬체에서는 도파민의 농도가 높을 때 D1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하고, 도파민의 농도가

낮을 때 D2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하다.

줄무늬체에서는 도파민 농도가 높아 D1형 수용체가 활성화되면 행동이 촉발되고 학습되기 쉬워지고, 도파민

농도가 낮아져D2형 수용체의 활동이 우세해지면 행동의 억제가 완화된다.[6]

즉, 줄무늬체에 도파민 농도가 높을수록 어떤 행동이 일어나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줄무늬체 도파민의 과활성을 동반하는 질환인 튜렛 증후군에 걸리면 조절되지 않은 급작스러운 움직

임이 일어난다.

반면, 줄무늬체 도파민의 농도가 낮아지는 질환인 파킨슨 병에 걸리면 동작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지고 움직

임도 느려진다.[15]

파킨슨 증상은 L-DOPA를 투여하여 도파민 농도를 높임으로써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약으로 도파민 농도를 높이면, 움직임이 촉발되기 쉬워지고 행동의 억제도 완화되므로, 도박 중독에

빠지기 쉬운 충동적인 상태가 되고,[16] 행동의 학습 양상도 달라진다고 한다.[17]


도파민 수용체의 종류 또한 뇌 영역마다 다르다. D

2형 수용체 중 하나인 D4 수용체는 줄무늬체에는 적지만, 전두엽에서는 다량 발현된다(위 그림).

그래서 전두엽의 D2형 수용체의 과잉 활동을 억제하여 정신분열증 증상을 완화하려 할 때는, D4 수용체와는

강하게 결합하지만 D2 수용체와는 약하게 결합하는 클로자핀(clozapine)이라는 약물을 사용하곤 한다.[10]

D2 수용체에 잘 결합하는 약물을 사용하면, 충동과 움직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무늬체의 D2 수용체

에도 영향을 주어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유~ ‘행복 호르몬’이라고 대충 불리던 도파민은 이 정도는 되는 녀석이었다.

도파민은 각기 다른 회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여러 영역으로 분비되며, 뇌 영역마다 도파민

수용체의 종류와 분포, 도파민 분해 효소의 종류와 밀도, 도파민 분비 장소 등이 다르다.


이것이 도파민이라는 한 가지 물질이 학습, 동기부여, 주의집중, 움직임을 비롯한 여러 기능에 관련된 이유

이고, 마음의 기능들을 따로따로 분리하기 힘든 이유이다.

또한 도파민라는 한 가지 물질이 정신분열증, 중독, 튜렛 신드롬, 파킨슨병 등 여러 질병에 관련된 이유이며,

도파민 시스템에 작용하는 약물들이 다양한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개개인의 다양성

 


그리고 다양한 개인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파민 시스템 하나의 해도 도파민 수용체, 도파민 분해 효소, 도파민 분비 장소, 도파민 신경 세포, 도파민의

분비를 받는 영역의 특색 등 무수한 작용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작용점은 유전적이거나 후천적인 차이로 인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줄무늬체에서 발현되는 D2 수용체의 유전자에는 몇가지 다른 형태(다형성; polymorphism)가 있는데,

이 유전자의 유전형에 따라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이전 행동을 얼마나 회피하는지가 달라진다.

전두엽에서 도파민을 분해하는 효소인 콤트(COMT)의 유전자에도 다형성(polymorphism)이 있는데, COMT의

유전형에 따라서 이전 행동의 결과에 맞춰 이번 행동을 얼마나 수정하는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게 뭔 소린가 싶을만큼  미묘한 차이지만, 이런 미묘한 차이가 온갖 작용점들에서 일어나 독특한 개개인이

탄생한다.[18]


개인의 다양성은 도파민이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다른 신경조절물질들과 상호작용하기에 더욱 증폭된다. 아세틸콜린은 도파민과 길항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도파민의 작용을 강화(또는 약화)하는 특징들로 인한 효과의 일부는, Ach의 기능을 강화 (또는 약화)

하는 특징들로 인해서 상쇄, 보완될 수 있다.


아세틸콜린 뿐만이 아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의 전구체(생체에서 최종 생성물이 합성되기 직전 단계의 물질, 전구체가 많으면 최종 생성물도 많아진다)는 도파민이며, 노르에피네프린을 분해하는 일부 효소들은 도파민도 분해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신경전달물질들의 작용이 얽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19]

최근에는 도파민이 글루타메이트 (glutamate)나 가바 (GABA) 등 다른 신경전달물질과 함께 분비된다는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20]


도파민의 분비를 받는 전두엽, 줄무늬체, 해마, 편도체 등의 영역은 피동적으로 도파민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이 영역들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중뇌에 피드백을 보내 도파민의 분비를 조절하며, 도파민 분비량에 맞춰 적응

한다.

예컨대 중독성 약물들은 도파민의 농도를 빠르게 높이는데, 이런 약물에 중독되면 D2 수용체의 밀도가 낮아

지고 도파민 분비량도 줄어든다.[21]


이처럼 도파민 시스템, 도파민과 상호작용 하는 다른 신경전달/조절물질, 도파민 분비를 받는 영역의 특성

등 모든 작용점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이 차이들 때문에 도파민이 작용하는 모습, 뇌가 활동하는

모습이 사람마다 달라진다.

타고난 유전적 차이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시대마다, 문화마다 다른 삶의 궤적이 뇌를 바꾸며 이 차이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그래서 세상에는 온갖 다양한 사람이 있고, 한 사람 안에도 그때그때 변하는 다양한 모습이 있으며, 그런

순간들을 지나며 사람들은 평생토록 변해간다.


이런 다양함 덕분에 세상에는 천재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고, 살다보면 밝은 시기도 있고, 아픈 시기도

있다.

누구든 어떤 부분에선가는 튀어나오고 어떤 부분에선가는 모자라기에,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은

없다. 모

자람과 질병이, 뛰어남과 건강이 있게 한 다양성의 한 모습임을 안다면, 모자라거나 아픈 사람들을 열등하

거나 불행하다고 보는 대신 그저 다르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무작위성과 우연성

 


그런데 뇌가 아무리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설계된 대로 움직일 뿐이라면, 뇌 속 물질들의 작용도 정교한 기계와

마찬가지인 건 아닐까?

뉴턴 물리학에서 말하듯, 뇌 속의 모든 분자들의 위치와 운동을 알면, 마음의 미래도 결정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포의 구조를 설명하는 그림에는 대개 생략되어 있지만, 세포 내부이 최대 40%는 단백질 분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단백질 분자처럼 나노미터나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입자들은 가만히 정지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브라운 운동을

한다.[22]

브라운 운동이란,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이 물에 넣은 꽃가루 입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 처음 발견한 현상

인데, 미소입자들이 기체나 액체 속에서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브라운 운동을 하는 단백질 분자들 때문에 세포 안쪽은 아래 동영상처럼 정신없이 복잡하다.


위 동영상의 1분 55초 쯤에는 시냅스로 분비될 소포체(vesicle, 동영상에서 파란색 구체)가 키네신(kinesin,

동영상에서 두 개의 발을 가진 연노랑색의 긴 막대)에 이끌려 미세소관(microtubule, 동영상에서 청록색의

긴 원통)을 따라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포체를 구성하는 막과 단백질들은 이렇게 키네신과 미세 소관의 도움으로 세포체에서 축삭돌기 말단까지

이동하는데, 그 광경이 로봇이 화물을 싣고 걷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앞서 설명한 브라운 운동 때문에 키네신의 발은 기계처럼 척척 진행하지 못하고, 두들겨맞고 휘둘리면서

어렵사리 한 발씩 내딛는다.[22]

이렇다 보니 들어올린 발이 때로는 뒤로도 간다.


생체의 단백질 분자들은 화학적 법칙과 브라운 운동이 주는 무작위적인 기회 사이에서 절묘한 기능을 이루며

작용한다.

다른 분자들과의 무작위적인 충돌 때문에 단백질 분자들은 화학식이 같더라도 접힌 구조가 조금씩 달라지고,

접힌 구조의 차이는 단백질 분자들의 반응 양상에도 영향을 미친다.[22]

이처럼 끊임없고 무작위적인 움직임 때문에 생명 활동은 동작을 완전히 예측할 수 있는 근대 기계들과는 다르다.


더욱이 뇌 속 물질들은 몸과 환경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개개인은 시대적인 변화나 날씨처럼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건들을 살아가며, 개개인이 우연히 섭취한

음식들이 뇌 속 물질들을 구성하고, 뇌의 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 우연적 사건들의 경로가 뇌 신경망을 바꿔간다.

그래서 브라운 운동의 무작위성을 무시한다손 치더라도, 개개인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기계가 아닌,

개인과 우연한 사건들의 마주침이 빚어낸 독특한 역사적 산물이다.[23]


질의 작용을 근대 기계처럼 단순하고 결정론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물질이라는 말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뇌 속 물질들의 작용은 기계라기보다는 생태계처럼 복잡 미묘하다.

마음은 “물질의 작용일 뿐”인 게 아니라 “물질씩이나” 되었기에 ‘뇌’라는 조건이 갖추어지자 마음이 생겨

났던(emergence) 것이다.[24]

이 정도면, 마음이 물질임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